본문 바로가기
도서리뷰

인간실격 - 추락하는 영혼의 고백록

by minorwtgr 2025. 4. 16.

 

불가능한 인간됨의 초상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일본 문학의 걸작으로,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고통과 소외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주인공 요조는 "사람들에게 불안을 주지 않는 얼굴"을 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광대 역할을 자처합니다. 그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타인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가면 뒤에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다는 깊은 절망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요조의 삶을 세 개의 수기 형태로 전달합니다. 세 번의 자살 시도와 수많은 실패를 통해, 요조는 점점 더 '인간실격'의 상태로 추락합니다. 그의 첫 번째 수기에서 우리는 어린 요조가 이미 인간 세계의 "비밀"을 알아차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사회적 가면과 위선을 간파하지만, 그 자신도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광대의 가면을 쓰게 됩니다. 이 이중성은 그에게 깊은 존재적 불안을 가져다 줍니다.

 요조의 비극은 그가 인간 세계에 적응하려는 시도가 모두 실패로 끝난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가족의 기대, 사회의 규범, 그리고 인간관계의 복잡성 앞에서 무력합니다. 그의 시선을 통해, 다자이는 인간 사회의 규칙과 기대가 얼마나 자의적이고 억압적일 수 있는지를 폭로합니다. 요조가 "인간이 되는 연습"이라고 부르는 그의 절망적인 노력은, 결국 그를 더 깊은 소외와 중독으로 이끌 뿐입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벼랑 끝에 선 사람이 내뱉는 마지막 고백처럼 읽는 이의 가슴을 찌릅니다.

 

 

자기파괴와 예술의 경계에서

요조의 두 번째 수기는 대학 시절과 그가 예술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화가가 되려는 시도와 함께 알코올, 약물, 그리고 창녀촌을 전전하는 자기파괴적인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 시기 요조는 자신과 비슷한 영혼을 가진 타케이치와 호리키라는 친구를 만나지만, 이 관계조차 그에게 구원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과의 만남은 그를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립니다.

다자이는 요조의 방황을 통해 예술가의 고통스러운 자의식을 탐구합니다. 요조에게 예술은 도피처이자 자기표현의 수단이지만, 동시에 그의 소외감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그는 자신의 그림에 진정성을 담으려 하지만, 세상은 그저 그의 '재주' 있는 표면만을 본다고 느낍니다. 이러한 불일치는 그의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요조의 자기파괴적 행동은 단순한 탐닉이 아닌, 인간으로 존재하는 고통을 잊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로 그려집니다. 그의 첫 번째 자살 시도는 창녀 시즈코와 함께하는 심해 투신으로, 이는 실패로 끝납니다. 이 사건은 이후 그의 삶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를 더욱 사회에서 격리시킵니다. 그는 자신이 '인간실격'이라는 것을, 즉 인간으로서 살아갈 자격을 상실했다는 것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됩니다. 요조의 눈앞에서 현실은 점점 환영처럼 흐려지고, 그의 내면의 고통만이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마지막 인간성의 불빛과 소멸

 요조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수기는 그가 총 세 번의 결혼과 관계를 맺은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요시코와의 결혼은 그에게 잠시나마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요시코는 순수함과 이해심으로 요조에게 접근하지만, 결국 그녀조차 요조의 모르핀 중독과 자기파괴적 성향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이 마지막 부분에서 다자이는 인간 관계의 취약성과 구원의 한계를 탐구합니다. 요조는 여러 번 사랑과 이해를 통해 구원받을 기회를 얻지만, 그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소외감은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가짜"라는 자기인식에 시달리며, 진정한 인간 관계를 형성할 능력을 상실합니다.

 소설의 결말에서 요조는 정신 병원에 수용되어 있으며, 이는 그의 '인간실격'이 완성된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는 이제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되어,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상태에서 그는 일종의 평화를 찾습니다. 모든 인간적인 기대와 가면에서 해방되어, 그는 마침내 자신의 존재 방식을 받아들입니다. "더 이상 무서운 것은 없다"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찾게 된 일종의 해탈을 암시합니다.

 『인간실격』은 단순한 한 인간의 실패담이 아닌, 현대 사회에서 진정성 있게 살아간다는 것의 불가능성에 대한 심오한 탐구입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요조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 우리는 정말로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그런 척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 작품이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력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현대인의 소외와 정체성 위기를 너무나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자이의 문체는 이 모든 고통스러운 여정을 섬세하면서도 냉정하게 그려냅니다. 그의 문장은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고, 시적인 동시에 잔인할 만큼 정확합니다. 『인간실격』은 작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비롯된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다자이 오사무가 자신의 마지막 자살 시도 전에 완성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그 무게를 더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소설이 아닌, 한 영혼의 심연에서 울려 퍼지는 절규이자 고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