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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아몬드 - 감정을 배우는 소년 윤재의 이야기

by minorwtgr 2025. 4. 13.

 

감정을 모르는 소년, 윤재의 특별한 여정

 

손원평 작가의 소설 『아몬드』는 뇌의 편도체(아몬드라 불리는 부분)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의 이야기입니다. 윤재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기쁨,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을 경험하지 못하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게 세상은 감정 없이 관찰되는 객관적 현실일 뿐입니다.

윤재의 엄마와 할머니는 그를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키우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합니다. 매일매일의 훈련은 윤재에게 감정이 아닌 '규칙'으로 사회를 이해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웃어야 할 때, 울어야 할 때, 화를 내야 할 때를 학습하며 감정 없이도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이브, 윤재의 인생을 뒤흔드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합니다. 가족과 함께한 외출에서 목격한 끔찍한 폭력 사건으로 할머니는 죽음을 맞이하고, 엄마는 중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였지만, 이 사건은 그의 내면에 미묘한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됩니다.

 

 

폭발하는 감정과 느끼지 못하는 감정의 만남

홀로 남겨진 윤재의 삶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곤'이라는 소년입니다. 곤은 윤재와 정반대의 존재로, 감정이 과잉되어 분노로 폭발하는 문제아입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폭력으로 표출하며 상처받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곤은 윤재를 거칠게 대하지만, 윤재는 어떤 감정적 반응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 무표정하고 조용한 소년이 오히려 곤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되고, 두 사람은 독특한 방식으로 서로의 세계에 스며들게 됩니다. 감정의 부재와 과잉이라는 극단적 대비를 이루는 두 소년의 만남은 서로에게 변화의 시작점이 됩니다.

윤재는 곤의 극단적인 감정 표현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관찰하고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반면 곤은 윤재의 차분함을 통해 자신의 폭발적인 감정을 조금씩 다스리는 법을 배워갑니다. 이들의 우정은 불완전한 두 존재가 서로를 통해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정상'의 경계를 질문하는 이야기

『아몬드』는 단순한 성장소설을 넘어, 우리 사회가 만들어놓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일반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랑이나 유대감을 형성할 수 없는 존재일까요? 작가는 이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며 스스로 대답을 찾아가도록 합니다.

윤재는 감정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의 행동과 말, 체온, 일상의 기억을 통해 감정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노력합니다. 이는 단순한 '학습'이 아닌, 타인과 진정으로 연결되고자 하는 깊은 '열망'입니다. 때로는 이러한 의식적인 노력이 무의식적인 감정 표현보다 더 순수하고 진실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곤은 윤재와 대조적으로 감정에 압도되어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분노를 통제하지 못해 고통받고, 폭력으로 자신을 보호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윤재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열고, 감정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하게 됩니다. 두 소년은 감정의 부족과 과잉이라는 양극단에서 만나 균형 잡힌 감정의 세계로 나아가는 여정을 함께합니다.

 

 

상처와 치유, 그리고 성장

 이 소설은 또한 트라우마와 상처,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치유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윤재와 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윤재는 선천적 조건으로 인해 사회에서 '이상한 아이'로 낙인찍히며 살아왔고, 소중한 가족을 잃는 경험을 합니다. 곤은 가정 내 폭력과 버림받음의 상처로 분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함께 치유해가는 과정이 됩니다. 윤재는 곤을 통해 자신이 느끼지 못했던 감정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곤은 윤재의 담담함을 통해 자신의 격정을 가라앉히는 법을 배웁니다. 서로 다른 두 소년이 만들어가는 특별한 우정은 그들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성장하게 합니다.

특히 소설 후반부에서 윤재가 보여주는 변화는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소년이 타인을 향한 진정한 연민과 사랑을 표현하는 순간들은, 감정이란 단순히 신경학적 반응만이 아니라 인간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아몬드』를 읽은 후, 감정에 대한 새로운 시각

『아몬드』를 읽고 나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감정은 우리 삶에 너무 자연스럽게 존재하여 거의 의식하지 못하지만, 윤재의 시선을 통해 보면 그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이 소설은 단순히 감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을 어떻게 인식하고, 표현하고, 조절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윤재는 감정을 직접 느끼지 못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 곤은 감정을 강렬하게 느끼지만 그것을 적절히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두 인물을 통해 작가는 감정의 '유무'보다는 감정과의 '관계 맺기'가 더 중요함을 시사합니다.

또한 이 책은 인간의 다양성과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윤재처럼 다르게 세상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존중받고 포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정상'이라는 잣대로 타인을 판단하기보다,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소통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공감과 연결의 소중함

 손원평의 『아몬드』는 표면적으로는 감정이 결핍된 소년의 이야기이지만, 그 본질은 인간의 공감 능력과 연결의 소중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타인과 연결되고 공감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그의 여정은 공감이란 단순히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경험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소설 속 인물들의 관계는 우리에게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때로는 많은 말보다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것,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깊은 연결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윤재와 곤의 관계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아몬드』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대의 독자들에게 감동과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감정 표현이 서툴러 고민해본 적이 있는 사람, 타인의 무표정한 얼굴 뒤에 숨은 이야기가 궁금했던 사람, 혹은 사회가 정한 '정상'의 기준에 의문을 품어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에서 위로와 공감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감정의 결핍과 과잉이라는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두 소년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모두가 불완전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서로를 통해 온전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합니다. 『아몬드』는 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깊이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소중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