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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셰임머신 - 수치심의 산업화

by minorwtgr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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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도구가 된 수치심의 메커니즘

 

 캐시 오닐의 『셰임머신』은 현대 사회에서 수치심이 어떻게 통제와 이윤 창출의 도구로 활용되는지 파헤치는 도발적인 탐구서입니다. 수학자이자 데이터 과학자인 캐시 오닐은 이전 저서 『Weapons of Math Destruction』에서 알고리즘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수치심이라는 강력한 감정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악용되고 있는지 분석합니다.

 책은 수치심의 두 가지 형태를 구분합니다. 하나는 사회적 규범을 유지하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건설적 수치심'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데 사용되는 '파괴적 수치심'입니다. 캐시 오닐의 주된 관심사는 후자, 즉 권력과 이윤을 위해 체계적으로 부과되는 수치심입니다.

 캐시 오닐은 특히 소셜 미디어 플랫폼, 광고 산업, 다이어트 및 웰니스 산업, 그리고 정부 기관들이 어떻게 수치심을 무기화하는지 상세히 보여줍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신체, 건강, 인종, 계층, 성별 등에 관한 불안과 열등감을 의도적으로 자극하고 증폭시켜 소비를 촉진하거나 특정 행동을 강요합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 산업은 체중에 대한 수치심을 조장하여 제품을 판매하고, 소셜 미디어 기업들은 사용자들의 자기 비교와 인정 욕구를 자극하여 플랫폼 참여를 높입니다.

 

 

수치심의 불평등한 분배와 그 영향

 

『셰임머신』의 가장 강력한 주장 중 하나는 수치심이 사회적으로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는 것입니다. 캐시 오닐은 빈곤층, 유색인종, 여성, 장애인, 비만인 등 이미 사회적으로 취약한 집단들이 불균형적으로 많은 수치심의 부담을 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자신의 정체성이나 존재 자체로 인해 공개적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 됩니다.

 특히 충격적인 사례는 복지 수급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수치 부여입니다. 캐시 오닐은 미국의 복지 시스템이 어떻게 빈곤층을 '의존적'이거나 '게으른' 사람들로 낙인찍고, 그들에게 수많은 관료적 장애물과 모멸적인 검증 과정을 강요하는지 상세히 기술합니다. 이러한 수치심의 정치학은 빈곤을 개인의 도덕적 실패로 프레임하여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반면, 캐시 오닐은 부유층과 권력자들은 종종 수치심으로부터 보호받는다고 지적합니다. 대기업의 환경 오염, 금융 사기, 또는 정치적 부패와 같은 사회적으로 훨씬 더 해로운 행위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도덕적 비난을 받습니다. 이러한 '수치심의 이중 잣대'는 기존의 권력 구조를 강화하고, 진정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게 만듭니다.

 

 

수치심의 굴레를 벗어나는 저항과 연대

 

 책의 후반부에서 캐시 오닐은 파괴적 수치심의 문화에 저항하고 더 건강한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그녀는 수치심의 체계적 속성을 인식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라고 주장합니다. 즉, 우리가 느끼는 개인적 수치심의 많은 부분이 사실은 이윤과 권력을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캐시 오닐은 특히 취약 집단들 사이의 연대와 공동체 형성이 수치심에 대항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그녀는 신체 긍정 운동, 빈곤층의 권리 옹호 단체, 정신 건강에 관한 공개적 대화 등이 어떻게 수치심의 고립 효과를 무력화하고 대항 담론을 형성하는지 보여줍니다.

 또한 캐시 오닐은, 건설적인 수치심은 여전히 사회적 역할이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녀는 수치심이 적절히 사용된다면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중요한 것은 수치심이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더욱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윤리적 책임과 공동체 의식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셰임머신』은 우리 사회의 숨겨진 감정적 경제를 파헤치는 통찰력 있는 작품입니다. 캐시 오닐은 수치심이라는 강력한  감정이 어떻게 상업화되고, 무기화되고, 불평등하게 분배되는지 날카롭게 분석하며 이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많은 불안과 열등감이 사실은 이윤과 통제를 위한 의도적인 설계의 결과일 수 있음을 일깨워주며, 더 공정하고 연민 어린 사회를 향한 중요한 대화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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